나무의 수사학 1 - 손택수
나무의 수사학 1
손택수
꽃이 피었다,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부터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나도 곧 깨닫게 되었지만
살아 있자,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리자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
비트는 법을 익히게 된 서른 몇 이후부터
나무는 나의 스승
그가 견딜 수 없는 건
꽃향기 따라 나비와 벌이
붕붕거린다는 것,
내성이 생긴 이파리를
벌레들이 변함없이 아삭아삭
뜯어 먹는다는 것
도로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 날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
참을 수 없다 나무는, 알고 보면
치욕으로 푸르다
- 시집 『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 2010) 중에서
1970년 전라남도 담양 출생.
경남대학 국문과 졸업.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등단.
시집; 『호랑이 발자국』(창비, 2003)과 『목련전차』(창비, 2006) 『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 2010) .
수상; 부산작가상, 현대시동인상, 제22회 신동엽창작상.
[출처]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