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성모성월 - 이성복

heystar 2011. 9. 16. 12:18

            성모성월(聖母聖月) 1 

 

 

                                                                              이 성 복

 

 

 

  그날 꽃들은 부끄러운 가슴과 눈물겨운 뿌리를 쓰다듬으며 피어오르고 봄은 달아나는 애인처럼 꽃 속에 묻혀 자꾸 죽고 싶어했다 봄은 아랫도리를 가리지 않은 아이처럼 길가에 방뇨했고 후후, 뜨거운 입김을 뿜으며 음료수 가게로 달려갔다 아름다운 오월 건조한 고기압의 땅에서 우리는 자꾸 죽고 싶었다 그날 사마리아 여인들과 함께 미사를 볼 때 버드나무 꽃가루가 창을 넘어 들어왔고 우리는 자꾸 죽고 싶었다, 죽을 생각은 없이 천주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여…늙은 양들의 기도는 간절했고 우리는 자꾸 죽고 싶었다 흰 나룻배보다 긴 꽃잎 속에 몸을 감고, 눈부시고 목메어 고개 흔들며 아무도 밟지 않은 땅을 가고 싶었다 아름다운 오월 버드나무 꽃가루가 눈을 덮을 때 미사는 끝났고 붉은 제단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사랑의 어머니,

  당신의 이름을 힘겹게 부를 때마다

  임종의 괴로움을 홀로 누리시는 어머니,

 

  불러주소서

  그 눈짓, 그 음성으로

  죄의 한 아이를… 

 

 

                                                    시집 『남해금산』(문학과지성사, 1986) 중에서

 1952년 경북 상주 출생.

서울대 불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77년 계간 《문학과 지성》을 통해 〈정든 유곽에서〉를 발표 등단.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남해 금산』,『그 여름의 끝』, 『호랑가시나무의 기억』등. 

현재 계명대학교 문창과 교수

     

                                                                                                                                                [출처]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