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과 표절 사이 - 박해성
모방과 표절사이
박 해 성
당신은 다른이의 작품을 읽다가 문득 '어디서 많이 봤는데...?'라는 익숙한 느낌을 받은 적이 없으십니까?
대부분 이런 느낌을 한 두 번씩은 경험했을 겁니다. 아리스토 텔레스의 <시학>에서 이르는 '모방론'은 인생을 모방하라는 의미이지 남의 글을 표절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더러는 자의적으로 혹은 고의로 이 말을 왜곡하거나 확대 해석하는 이들이 있기도 합니다. 심지어 내가 아는 어느 시인은 남의 작품을 표절(최소한 내가 보기에는 분명 표절임)해 문학상을 타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작가들은 누구나 모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같은 세상을 함께 호흡하다보면 누구나 유사한 느낌을 가질 수 있으며 그 시대의 발언 방식을 빌어 표현하다보면 다른 이와 비슷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남의 작품을 모방하거나 표절하는 것이 합리적 타당성을 획득한다면 창의적인 작가세계를 모독하는 것이라는 반발을 면할 수 없겠지요?
정의로운 창작정신(이런 말이 정말로 있기는 한 걸까?)이란 나탈리 골드버그의 말대로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는 것일 겁니다. 내면에 들끓는 마그마를 분출하는 자아의 카타르시스 - 모든 작가는 활화산을 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두렵고, 뜨겁고, 늘 고통스럽고..... 그리하여 잠들지 못하는 영혼입니다. 그런 영혼의 단말마가 말이 되고 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시인들의 시에는 피 냄새가 배어있기도 하지요. 그래서 쉬이 베끼면 안되는 겁니다.
다음은 누구도 감히 모방이나 표절이라고 못 박을 수는 없지만 그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는 예이츠의 시와 김소월의 시를 나름대로 비교 분석한 것입니다. 이러한 논의는 본인이 공식적 논문이나 학술지에 발표한 적은 없었으니 그 판단은 온전히 당신 몫입니다.
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William Butler Yeats
Had I the heaven's embroidered clothes,
Enwrought with golden and silver light,
The blue and the dim and the dark cloths
Of night and light and the half-light,
I would spread the cloths under your feet:
But I, being poor, have only my dreams;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출처-ww.google.co.kr/search]
만일 나에게 빛나는 금실과 은실로
수놓은 하늘나라의 옷감이 있다면,
한낮의 광명과 밤의 신비스런 어둠으로 짠
아스라한 푸른빛의 부드러운 옷감이 있다면,
나는 그 천을 당신 발 밑에 펼쳐 놓으리라:
그러나 나는, 가난해, 가진 건 오직 꿈 뿐;
당신의 발밑에 나의 꿈을 펼쳐놓았으니;
그대 나의 꿈을 사뿐히 즈려밟고 오소서. [해석- 박해성]
시인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순수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the half-light"은 어둠과 광명의 조화를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보는 그들의 전통적인 이미지로 볼 수 있지요. 이렇듯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직조한 천(=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의 발밑에 펼쳐 놓고 기다리는 사랑은 가난한 시인에게 삶의 온전한 존재적 가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라는 마지막 행에서 'because' 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나는 고민했습니다. 물론 '~이니까', '~때문에' 등의 종속접속사로 해석하면 그만이지요.
하지만 판단의 근거를 나타내는 for와는 그 의미가 다르고 유사한 어휘의 강도를 보자면 because>since>as의 순이기 때문에 원인과 이유를 좀 더 명확하게 나타내야한다는 문법적인 강박관념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Tread'와 'tread on'이 겹치므로 둘 다 해석할 것인지 아닌지도 고민했지요. (에고 이러다 나의 엉성한 영어실력이 다 들통 나겠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굳이 다루려고 하는 의도는 다른 데 있습니다. 이 시를 읽는 독자는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밝혀보자는 것입니다.
-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인용한 시는 김소월의 <진달래 꽃>의 부분입니다. 그래도 아직 감이 오지 않는다면....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여기서 'my dreams'는 '진달래꽃' 으로 대치되었으며 따라서 [나의 꿈= 진달래꽃]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행에서는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를 그대로 아름다운 우리말로 해석, 아니 tread on 을 "즈려밟고" 정도 분칠을 한 것 이외에 별다른 차이를 찾아낼 수가 없군요. - 내 눈이 어두운가???
'세익스피어 이후 창작은 없다'라는 말을 어디서 읽은 적 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세익스피어 역시 설화나 신화 등의 고전 텍스트에서 영감을 받아 골격을 다듬고 살을 입혔던 것이죠. 즉 아리스토 텔레스가 역설하는 '생의 방식을 모방'한 소위 창조적 모방이라 일컬을 수 있겠지요. 예를 들자면 우리가 흔히 어떤 사람(특히 근래에는 노숙자에 대한 시가 많음)의 현실을 본인(노숙자)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시인의 눈으로 좀 더 깊이있게 읽어내듯이 말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인생의 모방과 작품의 표절을 구분하는가 하는 현실적 잣대입니다. 솔로몬의 혜안이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하지요. 위의 두 작품을 비교 분석하면서 개운치 못한 마음을 무어라 변명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너나 잘 하세요' 한다면? ........ 할말 없슈. ㅠㅠㅠ
* 2011년 08월 - 박해성의 제멋대로 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