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학강좌

내가 쓰고 싶은 시 - 문정희

heystar 2011. 7. 18. 19:50

                 내가 쓰고 싶은 시

 

                                     문 정희

 

 

  세상의 시간이 2000년으로 넘어가고 있을 때 나는 고려와 조선을 떠올리고 있었다. 
  기생이라는 특수 신분과 성의 영역에 갇혀 그녀들이 남긴 빼어난 시작품마저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조선의 여성시인들을 우리의 고전문학 속의 소중한 시인으로 인양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작업을 하는 동안 결국은 누구보다도 먼저 나 자신이 왜곡된 시간의 바위를 뚫고 나와 푸른 창공으로 인양되고 있음을 보았다. 최근 초고속 정보화 시대가 열리면서 툭하면 제기되었던 활자매체로서의 문학의 존립 여부나 시의 존재 의미에 대한 의구심도 깡그리 사라졌다. 


  결국 마음껏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일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 동안 나는 시를 쓸 때 그 내용과 형식에 대해 누구보다도 깊이 고민했었다.
  어떤 명분으로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을 서둘러 발표하는 것을 경계했었다. 


  물론 자유시를 제일 많이 썼지만 [아우내의 새]를 통하여 자유혼을 그리고 싶을 때는 가차없이 장시를 택했고, [도미]나 [나비의탄생] 등 설화를 통한 주제의 형상화에는 시극도 시도했었다.

 
  대전엑스포 개막식 공연을 위한 주제의 형상화에는 시극도 시도했었다.
  대전엑스포 개막식 공연을 위한 [구운몽]을 쓰며 창극에 대한 공부도 했었다.

 
  내용면에서는 인간의 슬픔과 억제당한 자유와 침묵 그리고 페미니즘과 에코페미니즘, 최근에는 문명비평적인 작품도 몇 편 썼었다.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이 많지만 어떤 작품이 태어날 것인지 나도 궁금해 죽겠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모습을 말할 수 없듯이 지금 심정이 그렇다.
  다만 지금까지 쓰던 것과는 다른 주제와 형태를 쓰고 싶을 뿐이다. 바꾸고 변하고 왕창 멋지고 싶다. 

  고백하자면 최근에 나는 한밤중에 혼자 펄펄 뛰고 좋아하는 일이 가끔 있다. 
  곤히 잠든 사람들을 모두 깨워 '나 득음했다'고 큰소리로 소리치고 싶은 것 말이다. 


  성급하게 우려해보았던 문학의 위기는 아마도 문학의 호기일지 모른다.
  거품과 가짜와 미숙이 판치는 세상이니 진짜란 더욱 돋보이고 귀중하지 않겠는가.

      용기 있는 질(質)의 관리를 꿈꾸며

  예술 작품에 있어서 답습과 반복이란 있을 수 없다.
  새로운 것이 아닌 것, 이미 길들여져 낯익은 것은 말장 무효인 것이다.

 
  나의 이렇게 쓴다’라고 말할 만한 특별한 비법을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가령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비법을 결코 나의 시작법으로 계속해서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단연코 다시 깨뜨리고 깨뜨려야 마땅한 것이다. 

 
  기실 나는 나만의 시작법 대신 오히려 늘 의문과 회의를 갖고 있다.
  그저 습관적으로 쓰고 있는 이 시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지금 내가 취하고 있는 이 시어와 형식은 과연 적당하며 얼마나 독특하고 새로운가 하는 의문을 끝없이 제기해 보는 것이다.

   연전에 만난 친구인 조각가 캐롤 파커스 양의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그녀의 모습은 여러 의미로 예술가로서의 한 상징이며 그녀가 남긴 수북한 파편은
   화두처럼 난해하고 신선하게 지금도 내 가슴에 남아 있다.

  벌써 이 년 전의 일이다. 캐롤은 폭설이 하얗게 내린 한국의 산야를 깁스를 한 다리를 절뚝이며 돌아다녔다.
  조각가인 그녀는 한국의 도자기를 배우기 위해 풀브라이트의 기금을 받아 내한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조각에 새로운 영역을 첨가하기 위하여 한국의 백자 기법을 배우기로 한 것이다.
  일본을 제쳐두고 한국을 택한 것까지는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한국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당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유명한 경기도 일대의 도요지를 모두 헤맸지만 대강 겉모습만 보여줄 뿐 그 이상은 아무도 자기만의 비법이라고 선뜻 가르쳐 주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적어도 몇 백년 동안을 독특한 예술로서 전승되어 온 예술이기에 그녀가 기대하기로는 최소한의 것만이라도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재료나 기법상의 체계는커녕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도 이론적 규명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것이었다.
  더구나 기가 막힌 것은 모두가 자기만의 비법이라고 신비 속에 묻어 둘 뿐 쉽게 공개하지 않으려는 데는 서양인인 그녀로서는 어떻게도 이해가 안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몇 달이 지나도록 스승은커녕 제대로 된 가마 한번 구경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날마다 눈쌓인 한국의 산야를 헤매다가 그만 미끄러져 다리에 깁스까지 한 것이었다.
  그녀는 한해를 꼬박 절뚝이며 고생 아닌 고행을 한 끝에 결국 백자의 감촉에다 서양식의 조형적 표현을 가한 독특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녀는 도자기에는 끝없는 사막이 펼쳐져있는가 하면 어떤 것에서는 흰옷 입은 성자가 멀리서 가물가물 걸어오고 있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케롤 파커스양의 감동은 미국 문화원에서 열린 그녀의 전시장에서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떠나기 하루 전날, 자신의 작품을 한 점도 팔지 않고 버티던 그녀는 결국 단 한 점만을 남기고는 전부를 아주 깨끗이 깨뜨려버린 것이었다.

   너무나 놀라서 만류하는 친구들에게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에게는 언제나 용기 있는 질의 관리(Quality control)가 필요해!'
  그녀가 떠난 후, 우리는 수북한 파편으로 남은 그녀의 작품들을 보면서 그녀가 이곳에서 얼마나 백자에 몰입했고,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가를 생각하고 조용히 전율했다.

  나는 다시 나의 시작법을 생각해 본다. 
  나만의 비법이라고 하면서 오랫동안 답습과 반복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그런 작품을 전시장에 내놓고 관객에게 감탄을 강요하고 섣불리 값을 매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더구나 나는 얼마나 용기있게 '쿠알리티 콘트롤'을 하고 있는가. 


  시는 때로 영감과 밀접한 관계를 갖기는 해도 결국은 언어 예술이다.
  그리고 언어란 너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기호이다.
  그러므로 시작법도 세울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시작법에 따라 시를 쓰는 시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시는 나의 망루이다. 시를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시를 통하여 세상을 이해할 뿐이다. 
  그리고 시를 통하여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 


  오늘도 나는 쓰고 또 쓴다. 그리고 버리고 또 버린다.
  그것은 나의 시작법이면서 아울러 내 존재의 이유이다.

 

1947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출생. 동국대 국문과와 同 대학원 졸업. 서울여대 신학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 받음. 1969년 《월간문학》신인상 당선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찔레』, 『아우내의 새』, 『남자를 위하여』를 비롯하여 한국 대표시인 100인 시선집 『어린 사랑에게』과 시극집 『도미』등 다수 있음.  '현대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을 수상. 현재 동국대 문예창작과 겸임 교수로 재직 中.

                                                                                출처: 웹진-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