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위 - 신동옥
시나위
- 첫번째
신동옥
이 빠진 사발에 더운 물을 가득 채우라, 그 한가운데 대나무 가지를 분질러 세우라,
그 가지 삽시간에 꽃피울 테다, 이 담벼락 속엣말은 영영 상스러울 테니, 샅이 곪아
죽은 창기(娼妓)가 마지막 노래를 부르러 날아오리니, 찢긴 북을 불탄 피리를 내 오
라, 열손이 잘려 죽은 대장장이가 제 손톱을 거두어 오리니, 다시 쇳물에 식칼을 녹
이라, 네 새끼 잡아먹은 찬 우물엔 시퍼런 구름이 내려 스미리니, 곡기를 끊으라 배
꼽을 전폐(全廢)하라, 네 입은 네 입이 아니고 네 밑은 네 밑이 아니리니, 내 한 마디
한마디에 네 온 핏줄은 수은으로 들끓을 테다, 행여 더러운 몸이라면 즐겨 흘레붙으
라, 내 너희의 접붙은 몹쓸 것들을 들러붙은 그대로 도려내 다디단 술을 담그리니,
자자손손 그 술을 마셔 악업을 씻고 나서야 비로소 너희는 습생(濕生)이다,
내 너희의 온 몸뚱이 넋 껍데기를 뭉치고 다져 묻으리니, 삼라만상을 덮고도 남을
염통 하나 억겁을 거슬러 구천을 건너라, 가라, 지금이라도 늦고, 지금이 아니라도
늦된 버러지들아, 붓대에 붉은 기를 매달고 피바람에 춤추는 서로의 이마에 새기라,
큰 박수소리 한 번에 잊히고 말 이 더늠, 더늠, 더늠을.
월간 『현대시』 2009년 6월호 발표
1977년 전남 고흥 출생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2001년 <시와 반시> 신인상 등단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랜덤하우스)
현재 인스탄트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