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몰(歿) - 박주하
heystar
2024. 10. 27. 10:58
몰(歿)
박주하
숲은 나비의 운세를 접었다. 춘몽과 길몽 사이를 오가며 한가로이
춤을 출 것이란 말, 온 들에 꽃이 만발하였으니 그 향기를 탐낼 것
이란 말, 그런 희망은 아무래도 미래에 닿지 않는다. 다만 오늘의
힘겨운 숨을 몰아 묵시(默示)의 수렁에 흘려 넣는다. 심호흡을 물
방울에 적셔 후박나무 잎새에도 적어둔다. 햇빛을 쫓아 자리를
가려 앉는 나비의 잔등이 반짝인다. 저렇게 여리고 아름다운 등짝을
가진 자는 삶이 아니다. 그것은 삶이 되기 이전의 문법. 일생을 등만
보이며 목숨을 일군 이를 안다. 그는 미래를 가진 적이 없으며 미래를
원한 적도 없다. 미래를 원하지 않았으므로 더 깊은 미래에 있는 것
같은 그의 그림자에선 향기가 났다.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는 그의
겨드랑이에서 풍기는 몰(沒)의 내음. 가뭇가뭇 흔들리는 그 숨결을
더듬다가 붉은 꽃잎처럼 문드러진 전생이 있다. 찢어진 날개를 접는
나비에게 넌 누구의 상처냐, 물었을 때 그는 말했다. 나는 언어들이
지나가는 몸, 벌레들이 꾸는 꿈. 숲은 최초의 감정으로 나비를 받아
안는다. 더 어둡고 더 먼 곳을 바라보는 나비의 눈빛 속에서 바람이
분다. 沒의 틈이 격하게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