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의 시
불량샴푸
heystar
2022. 9. 26. 23:57
불량 샴푸
박해성
잠결에 머리를 벅벅 긁는다 잠이 툭툭 끊어진다
잠의 변방이 달의 분화구로 들어가는 통로처럼 어지럽다
방부제에 중독된 꽃들이 분열증처럼 피어나는 거기,
눈 뜬 자들은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묵계가 있었으니
깨어나지 마라, 가려운 머리통은 삿되고 헛된 것이라
뇌리 속 똬리 틀었던 파충류에 지느러미가 돋는 징조이니
불량한 것은 불온하고 불온한 것은 불안하다
그래, 샴푸를 바꿔야겠어
머릿속에서 빠져나온 검은 실뱀들이 사방으로 숨어든다
한 마리가 잽싸게 벽을 타고 기어오른다 아, 징그러워!
비명에 놀란 달이 방바닥에 쓰러진다 목이 길고 푸르다
허물만 남은 달을 안고 나는 조금을 건너 사리로 간다
해풍이 상어 떼처럼 달려든다 저들이 내 몸을 다 발라먹고
뼈만 남길 것 같아, 그래, 저 쟈스민향을 버리자!
몽유의 숲을 탈출하지 못한 실뱀들이 시커먼 분화구로 빨려든다
악착 같이 내 어깨를 물고 늘어지거나 등줄기를 타고 스멀스멀
눈치 보는 놈들도 있다. 허나 구멍의 식욕은 윤리적이라
검은 것과 흰 것, 날것과 익은 것 그리고 고뇌하는 것과
꿈꾸는 것들을 가리지 않고 깨끗이 삼켜버린다
몸통을 절반쯤 먹힌 잠의 꼬리가 꿈틀, 허공을 친다
- 출처; 『스토리문학』 2022, 하반기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