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조
아득한 행간 - 이승은
heystar
2011. 6. 27. 09:54
아득한 행간
이승은
-마흔아홉
바람결에 기웃대는 한옥마을 저물녘 같은, 맞배지붕 고샅길 옆 외로 튼 소나무 같은, 열나흘 달빛만 같은, 입에 담긴 은단 같은,
-모서리
여태껏 가운데엔 감히 앉지 못하고
눈길조차 버겁던 오랜 시간의 그늘
단 한번 꿈꾸는 그대 곁
아스라이 기운 각도.
-백일홍
가두지 않았어도 제 풀에 갇히고 마는
보내지 않았어도 홀연히 떠나가는
한 백일 붉고 붉었던 기척마저 붉었던,
-가랑비
눈시울 젖는 것은 차마 볼 수 없다기에
미루나무 저 꼭대기 까치집 바라봅니다
봄마저 왔다 갑니다
가랑가랑 갑니다.
-에필로그
지옥과 천국 가는 갈림길 가장자리에
복사꽃 피었다가 더듬더듬 질 때까지
양쪽 길 맨발로 걷는 일
꽃잎 다 짓찧는 일.
시집 『환한 적막』(동학사, 2007) 중에서
-1958년 서울출생.
- 동국대학교 졸업
- 1979년 문공부 주최 전국민족시백일장등단.
- 한국시조작품상, 대구시조문학상, 이영도 시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수상
- 시집 <내가 그린 풍경> <시간의 물 그늘> <길은 사막 속이다> <환한 적막> <시간의 안부를 묻다> <꽃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