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조

번개 - 이해완

heystar 2011. 6. 20. 17:54

              번개

 

                   이 해 완

 

 

대낮 칠흑 속을 익명의 한 사내가

 

천상의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 내려와

 

시퍼런 조선 낫으로 어둠을 베고 있다

 

단칼에 한 다발씩 그렇게 쳐나가며

 

지치면 한 됫박의 소나기도 끼얹어가며

 

때로는 우르릉 쾅쾅 기합도 좀 넣어가며

 

한동안 열심이던 그도 지쳐 쓰러지고

 

마알간 밤하늘에 별들만 눈을 뜬 채

 

지나간 슬픈 얘기를 귀엣말로 속삭인다

 

 

                   * 이해완 시조집 <내 잠시 머무는 지상>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