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루마니아 동전 외 - 정윤천

heystar 2019. 10. 9. 14:34

 루마니아 동전 - 정윤천
  

   삼킨 동전 한 개를 사이에 두고 젊은 아버지와 앳된 아들이 마당에서 보낸 하루가

있었다 동전을 기다리던 부자의 일에는 아버지의 꼬장한 성정이 도사려 있었다 오래

고 먼 것들이거나 지루하고 다정했던 일들을 이해하기에 父性의 개론들은 지금도 당

신의 마당처럼 깊어 보일 때가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삼킨 동전을 당신의 생일처럼 궁구하며 있었는데 먼 훗날 루마니아

처럼 멀고 까마득했던 동전이 당신의 부지깽이 끝에서가 아닌 꿈속에서 집혀지던 일이

못내 궁금해지곤 하였다

  백수광부의 시절 속으로는 꿈에서 주워 올린 滑石의 날들이 루마니아 동전처럼 찾아

왔던 적도 있었다 깨진 활석 조각을 주웠던 손아귀를 풀면 오래 전에 삼킨 문양의 동전

이 되어 있고는 하였다

  한낮인데도 둘러앉아서 활석을 다투었던 이들의 판에서처럼 바닥에 깔아 놓은 신문지

위에서 아들의 인분을 헤집던 당신의 막대기 끝에서 같이 끗발을 고대했던 아들의 한 때

가 꿈속에서 주워 올린 활석 조각의 일 같기는 하였다

  루마니아도 루마니아 동전도 본 적이 없었는데 주었다가 흘린 한 닢의 낯선 문양에게로

루마니아 동전이라고 여겨 주었던 기억 너머에 해 끝이 노루귀만큼 남을 때까지 끝나지

않았던 판에서 같이 삼켜진 동전 한 닢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었다

  동전을 줍던 잠에서 깨어나면 손잡이에 땀이 찬 당신의 부지깽이 끝에서는 루마니아나

마니아의 동전보다 먼데서 피었던 애기똥꽃 한 송이가 바람 속에 사뭇 살랑거려 주기도

하였다.
  
  - 『문예바다 2017 겨울호에서   

 

 

 발해로 가는 저녁 정윤천

 

  발해에서 온 비보 같았다 내가 아는 발해는 두 나라의 해안을 기억에 간직하고 있었던

미쁘장한 한 여자였다 마을에서는 유일하게 자전거를 다루어 들을 달리던 선친의 어부인

이기도 하였다 학교 가는 길에 들렸다던 일본 상점의 이름들을 사관처럼 늦게까지 외고

있었다 친목계의 회계를 도맡곤 하였으나 사 공주와 육 왕자를 한 몸으로 치루어 냈으나

제위 기간 태평성대라곤 비치지 않았던 비련의 왕비이기는 하였다
 
   막내 여동생을 태우고 발해로 가는 저녁은 사방이 아직 어두워 있었다 산협들을 연거푸

벗어나자 곤궁했던 시절의 헐한 수라상 위의 김치죽 같은 새벽빛이 차창 위에 어렸다가 빠

르게 엎질러지고는 하였다 변방의 마을들이 숨을 죽여 잠들어 있었다
 
   병동의 복도는 사라진 나라의 옛 해안처럼 길었고 발해는 거기 눈을 감고 있었다 발목이

물새처럼 가늘어 보여서 마침내 발해였을 것 같았다 사직을 닫은 해동성국 한 구가 아직 닿

않는 소자들 보다 먼저 영구차에 오르자 가는 발목을 빼낸 자리는 발해의 바다 물결이 와서

 

메우고 갔다 발해처럼만 같았다
  
 - 시와 사람 2018 봄호에서
  

 

     목적도 없이 - 정윤천    
 
 헌 신을 버리고 새 신을 삽니다 괜찮습니다
 헌 시를 버리고 새( )를 씁니다 괜찮습니다
 뒤꿈치가 한 사날 불편할 수 있습니다
 잠옷 차림의 하숙 주인 여자가 두꺼비집을
 내려버리고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만약에
 어느 자리에선가
 내가 지금보다 고운 옷을 입고
 높은 말을 주워 삼키는 일이 생기더라도
 괜찮을지 모릅니다

 저 위에
 ()자 하나가 빠져 있기도 합니다

 목적도 없이
 써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다시올 문학 2018년 봄 여름호에서

 

 

1991실천문학'1회 실천문학상'으로 시 등단

시집 생각만 들어도 따숩던 마을의 이름』『흰 길이 떠올랐다』『탱자 꽃에 비기어 대답하리

       『구석, 시화집 십만년의 사랑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