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안개의 식생활 2 - 박지웅
heystar
2018. 4. 13. 18:15
안개의 식생활 2
- 춤추는 문
박지웅
저 흩어지는 출구를 사람들은 生이라고 불렀다
안개속에 그물을 던진 어부들이
괴이한 물고기를 건져 올렸으니 꿈이라 하였다
서둘러 뱃머리를 돌렸으나
출구를 찾는데 꼬박 사흘이 걸렸다
안개와 사흘 밤낮을 보낸 어부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퍼트리며
자욱한 얼굴로 병풍 속을 돌아다녔다
안개 낀 날,
사람들은 못을 박거나 그림을 걸지 않았다
맥없이 저편으로 떨어진 못과 그림은 찾을 수 없어
그려놓은 그림이 뚝뚝 떨어지는 저 화폭을,
가지도 없이 피고 진 꽃들의 공터를,
사람들은 生이라고 불렀다
비단안개가 모호한 늪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발길질할 수 있는 고운 문짝이 있었고
썩은 발판을 이루었다가 떨어뜨리기도 하였다
손에 한 줌 비명을 움켜쥐고 그들은 여백으로 떨어졌다
안개는 세상이 그려지지 않은 곳
실은 흰색이 아니라 채색하지 않은 일종의 여백
그리지 않고 그려서 채운 마지막 단추 같은 것
- 출처; 박지웅 시집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문예중앙시선 46
1969년, 부산출생
- 추계예술대학교 졸업
- 2005년 문화일보 신예문예 등단
- 수상; 지리산 문학상, 천상병 문학상,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 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