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의 시조
비금도
heystar
2018. 3. 25. 10:52
비금도
박해성
"나 요즘 연애시 써, 도통 잠을 못 잔다니까"
계절로 치자면 늦가을쯤이고 하루라면 저물녘인 K가 롤리팝 같은
나타샤를 사랑하노라 고백합니다. 듣고 보니 비밀 같아 먼 수평선으로
눈길을 돌리는 나, 거짓이거니 농담이거니… 슬쩍 엿본 그의 두 눈이
우련 붉어집디다. 아, 병이 깊었구나! 나는 그냥 알 것만 같아 묵묵히
그의 뒤를 따라 걷습니다. K는 화난 듯 무안한 듯 저만치 앞서갑니다.
구부정한 뒷모습이 마치 나를 보는 듯해 눈물이 핑 돌았는데요. 나 또
한 사랑에 빠져, 벼락같은 사랑에 빠져 발해를 놓지 못합니다그려. 그
리하여 우리는 서로 함께인 듯 홀로인 듯 지치도록 명사십리를 걸었습
니다.
나 또한 사랑에 빠져, 벼락같은 사랑에 빠져
- 계간 『문학청춘』 2018, 봄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