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피고 싶으세요? - 박해성
바람 피고 싶으세요? - 박해성
좋아하는 사람과 봄날 인사동을 거닐며 허물없이 담소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상대가 남자이던 여자이던, 나이가 많던 적던 크게 상관없다.
얘기의 주제 또한 아무러면 어떤가.....우리는 서로 이미 마음의 빗장을 풀었음에야!
꽃샘바람이 제법 쌀쌀한 봄날에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
물론 대답을 망서릴 필요는 없었다, 나 또한 그 친구가 그립던 터였으니.....
우리는 햇빛 쏟아지는 도심에서 손을 마주 잡았다,
그녀! 세월의 벽을 넘어 나에게 다가온 이슬처럼 맑고 해사한 얼굴의 젊은 내 친구....
가늘고 차가운 그녀의 야윈 손이 콧등을 시큰하게 한다.
나는 안다, 그 가늘고 여린 몸 속에 끓어 넘치는 열정을.....!
그러나 그녀는 차분하고 온화하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전형적인 外柔內剛의 표본이다.
나처럼 덤벙대거나 서둘지 않으며, 좀처럼 흔들릴 것 같지 않은 눈빛, 나지막하지만 선명한 색깔로
마음에 와 닿는 목소리의 톤이며...아, 이런 감정을 사랑이라고 해야하나....?
우리는 무쇠 솥에서 퍼주는 밥으로 점심을 먹고 딱딱한 나무의자가 있는 촌스런 찻집에서 대추차를 마셨다.
그 동안 무슨 얘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누가 더 많이 얘기하고 누가 더 많이 들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똑 같이 생긴 투박한 찻잔을 사서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내 딴에는 소위 "글쟁이" 인 그녀가 밤새워 고뇌할 때 목을 추길 수 있는 한 모금의 차가되어 그녀의
책상에 함께 있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창 밖이 보이는 찻집에서 그녀가 물었다, "바람 피운 적 있나요?"
"바람"이라.....남편생각을 하면 사랑 때문에 가슴이 저리다는 그녀이다.
가끔은 일탈을 꿈꾸며 설레임으로 출렁이는 만남을 그리워한다는 풋풋한 그녀...
일상적이지 않은 그녀의 질문은 당돌하다거나 무례하다는 느낌보다는 차라리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래, 나도 "바람"이라는 낭만이 있었지!--
난 얼른 한 남자를 떠 올렸다, 왜 그랬을까?
무엇 때문에 "바람"이라는 단어에 "그"를 연상했을까?
그 남자는 어릴 적 학교를 같이 다녔고 내가 먼저 결혼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친구?였었다.
십 몇 년이 훌쩍 넘어 어느 날 연락이 왔다,
그 설레임! 내가 누군가에게 첫사랑으로 기억되고 있었다는 로맨틱한 달콤함이 내 삶을 훨씬 풍요롭게
해주지 않았던가?
머리숱이 성글어진 그와 몸무게가 처녀 때 두 배쯤 늘어난 나는 만나자마자 반말을 쉽게 했고 그 많은
옛 기억을 하나씩 살려내기 시작했다.
" 그 생물 선생님 있잖아....." 하나가 이렇게 시작하면 " 맞아, 맞아.....그래, 그래......"
긴 설명 없이도 서로 통하는 공동의 추억이 그와 나 사이에서 쉽게 세월의 벽을 밀어내었다,
그리고 서로 체면 차릴 것 없이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내어 웃었다.
"죄 의식을 느끼지 않으셨어요?" 따듯한 커피를 마시며 그녀가 물었다,
"왜 그래야 하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난 너무 쉽게 대답했다.
사실 내가 그 옛날 남자친구를 만나는 동안 한번도 죄의식을 느낀 적은 없었다.
내 남편은 예나 지금이나 일요일에도 집에서 쉬고 싶어한다,
반면에 나는 어디든 돌아다니는걸 좋아한다.
나는 동행이 생겨 좋고 남편은 내 불평이나 눈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 좋다.
결혼한 여자는 왜 꼭 남편하고 같이 행동해야만 하는가 말이다.
강물을 바라볼 수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왈츠를 들을 수 있게 해 주는 그 남자,
화장실에서 화장지를 갖다달라고 아무렇게나 소리 질러도 부끄럽지 않은 내 남편,
밤늦은 술자리에는 나를 잘 아는 두 남자가 마주 앉아 호형호제하며 담배연기를 뿜기도 했었다.
늦은 밤에 헤어지면서 남편의 팔장을 낀 나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멋진 밤이야, 또 만나~~~!"
나는 다시금 스스로를 긴장시키고 단련하는 계기가 되었고 두 남자는 한 인간을 "여자"나
"아내"로만 보던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리라.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결혼을 소유의 개념으로 인식했던 의식을 탈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성숙의 진통은 나이와 상관없이 뜬금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발짝 더 깊이 인생의 깊은 골짜기로 들어설 수 있으려니.....
왜 우리는 남편과 아내는 "사랑"으로 표현하고 부부가 아닌 남녀의 만남은 "바람" 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일까?
모든 "결혼"이 사랑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모든 "바람"이 사랑을 오염시키지 않을 수 도 있지 않을까?
그때 그를 만났던 일이 "바람"이라면 지금 내 앞에 앉은 그녀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할까?
만나는 동기나 과정, 의미가 같다면 같은 이름으로 불려져야 하는 것 아닌가?
"바람"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 일정한 곳으로부터 시작되는 법도 없다,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언제나 멈추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바람의 형체를 본적이 없고 소유해 본적이 없다,
다만, 지난 다음에야 그 흔적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바람은 그냥 그런 것이다.
나는 또 다시 새로운 "바람"을 기대한다,
가슴을 설레도록 헤집는 봄바람도 좋고, 한 여름 나무그늘 밑을 지나며 땀을 식혀주는 소슬바람도 좋다.
낙엽을 흩날리는 로맨틱한 가을바람도 좋고, 눈가루를 날리며 대지를 뒤덮는 표독스런 겨울바람도 좋다.
내가 죽는 날까지 나는 변화무쌍한 바람 속에서 새로운 것과 만날 것이며,
한 자리에 안일하게 길들여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바람 앞에 세울 것이다.
그러나 조심할지어다, 무모한 광란의 태풍은 깊은 상처를 남길지도 모르는 일!
오늘 만난 그녀에게서는 상큼한 내음이 나는 봄바람이 불었다,
나는 온 몸으로 그 바람 앞에 선다, 어쩌나.....난 또 "바람"난 것 같다!
- 박해성의 <내멋대로 수다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