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201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전원 미풍 약풍 강풍
윤지양
0100
밤이었다. 눈을 떴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발가락으로 더듬다
0010
새벽에 매미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다. 여름엔 매미가 커지고 점점 커져서
새를 잡아먹는다. 새소리를 들을 수 없다.
1000
숨이 막히는 줄 알았어.
0100
비행기 엔진 소리
잡아먹힌 새가 매미가 되는 소리
1000
(나는 이곳에 없다.)
0001
침대 위의 옷가지
0100
침대는 깨끗하다. 아직은 숨이 막힐 때가 아니다. 탁자 위 물 한 컵
0010
이곳에 없다
1992년 대전 출생. 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심사평]
무심하고 당돌한 시…앞으로가 더 기대돼
심사를 맡은 세 사람은 투고작들 가운데 7명의 원고를 1차로 골라냈고, 그 중 셋을 다시 추려 논의를 이어갔다. 강응민의‘꽃은 여남은 몸짓의 침묵이다’ 외 2편은 유장한 흐름과 단단한 구축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비교적 긴 시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행까지 긴장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다만 그 긴장으로 인해 시의 흐름이 때로 경직된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조금 더 유연하게 강약 조절이 이루어졌으면 좋았을 것이다. 유지나의 ‘귀귀귀귀’ 외 2편은 장면에서 장면으로 건너뛰는 서늘한 비약이 인상적이었다. 비약 속에 감추어진 감정 혹은 사건이 읽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기기도 했다. 그러나 우연성과 자의성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끝내 지우지 못했다. 집중의 힘이 조금 더 강해진다면 이분의 작품도 머지않아 다른 지면에서 만나게 되리라 믿는다.
우리는 윤지양의 ‘전원 미풍 약풍 강풍’ 외 4편에 어렵지 않게 마음을 모았다. 눈치 보지 않고 자신만의 시적 착지점에 닿은, 혹은 닿으려 하는 원고들이었다. 사소한 착상을 충분히 확장시킬 줄 알았고, 그렇게 확장된 세계에는 독특한 파토스가 담겨 있었다. 투고작 전반에 신뢰가 갔다. 이분이 앞으로 쓸 작품들을 계속 읽고 싶어졌다. 5편 중 특히 2편, ‘전원 미풍 약풍 강풍’과 ‘누군가의 모자’를 두고 어느 쪽을 당선작으로 삼을지 고심했다. ‘누군가의 모자’는 괴팍하면서도 생기 있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였다. ‘전원 미풍 약풍 강풍’은 작은 모티브에서 출발하여 무심하고 당돌한 스타일로 감각과 정서를 끌어내는 시였다. 설왕설래 끝에 한겨울에 읽는 한여름의 시, ‘전원 미풍 약풍 강풍’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축하 드린다. 건필을 빈다.
심사위원 - 황인숙, 김정환, 신해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