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서쪽으로 다섯걸음 - 전동균

heystar 2016. 12. 31. 19:08


    서쪽으로 다섯 걸음


                                           전동균



   얼굴에 재를 칠하고 서쪽으로 다섯 걸음 가서 나뭇가지에 흰 띠를

묶었네 당신 뼈를 묻었네


   내 팔은 내 몸에 있으나

   당신의 것

   내 노래는 내 목젖에 잠겨 있으나

   또한 당신의 것


   유월에, 유월 까마귀 소리에

   열매 같은 속꽃을 피워 출렁대는

   무화과 그늘

   천리千里


   마음을 다해도 갈 수 없는 곳이 있으니, 여기

   무심한 듯 가지를 흔드는 나무에게도

   꽃은 유곽이며

   감옥이니


   땅의 흙들이 고개를 쳐들어 아아 입을 벌리고 붉은 실들이 안개처럼

풀려나오고


   다시 서쪽으로 다섯 걸음 가서 머리털을 잘라 불태웠네 새끼 밴 암고양이

와 눈을 맞추고 목을 베었네


   춤을 추듯이, 나비춤을 추듯이


                                       [출처] 『유심』2010, 7/8월호에서


1962년 경주 출생

- 중앙대학교 문창과 박사.

- 1986년 『소설문학』 으로 등단.

- 서라벌 문학상, 백석문학상 수상.

- 시집; 『함허동천에 서성이다』『거룩한 허기』『우리처럼 낯선』등.

- 현 동의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