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死者의 書 - 유병록

heystar 2016. 11. 21. 00:18


        사자死者의 서


                                    유병록



거기에서는

죽은 자의 피부를 벗겨 가까운 사람들이 나누어 가진다더군

아끼는 책을 장정하고 이름을 새긴다더군


죽은 자는 책이 된다더군


아이가 태어나 글을 익히면

최근에 죽은 자의 피부로 감싼 책을 선물한다더군

그를 대부로 삼는다더군


거기에서는

몇권의 책을 장정하며 성인이 된다더군

결혼을 서약할 때는 책에 손을 얹고

여기 장엄한 생을 두고 맹세합니다, 말한다더군


때가 되면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을 유언으로 남겨야 한다더군


거기에서

죽은 자는 몇권의 책이 된다더군

문자의 외투가 된다더군


늙어서 죽은 자는 지혜의 책이, 젊어서 죽은 자는

혁명의 책이 된다더군

아이가 죽으면 예언서가 된다더군


삶에 관한 의문이 드는 저녁에 쓰다듬는

한권의 책이 된다더군


-출처; 유병록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에서


  1982년 충북 옥천 출생.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등단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2014,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