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앉은뱅이 저울 - 함민복

heystar 2011. 3. 28. 08:10

      앉은뱅이저울

 

                                            함민복

  

 

  물고기 잡는 집에서 버려진 저울 하나를 얻어왔다

 

  저울도 자신의 무게를 달아보고 싶지 않았을까

  양 옆구리 삭은 저울을 조심 뒤집는다

 

  삼 점 칠 킬로그램

  무한천공 우주의 무게는

  0이더니

  거뜬히 저울판에 지구를 담은

  네 무게가 지구의 무게냐

  뱃장 크다

  지구에 대한 이해 담백하다

 

  몸집 커 토막 낸 물고기 달 때보다

  한 마을 바지락들 단체로 달 때 더 서러웠더냐

  목숨의 증발 비린내의 처소

    검사필증, 정밀계기 딱지 붙은 기계밀정아

  생명을 파는 자와 사는 자

  시선의 무게에서도 비린내가 계량되더냐

 

  어머, 저 물고기는 물 속에서 부레 속에

  공기를 품고 그 공기로 제 무게를 달더니

  이제 공기 속에 제 몸을 담고 공기 무게를 달아보네

  봐요, 물이 좀 갔잖아요

  푸덕거림 버둥댐 오역하던 이도 지금은 없고

  옅은 비린내만 녹슨 페인트 껍질처럼 부러진다

 

  저울은 반성인가

 

  늘 눌릴 준비가 된,

  바다 것들 반성의 시간 먹고 살아 온

  간기에 녹슨 앉은뱅이저울은

  바다의 욕망을 저울질해주는

  배 한 척과 같은 것이냐

 

  닻 같은

  바늘을 놓아버릴 때까지 저울은 저울이다

 

                              계간 『시작』 2010년 겨울호 발표   

1962년 충북 중원에서 출생. 1989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시 〈성선설〉등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우울씨의 일일』『자본주의의 약속』『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말랑말랑한 힘』이 있고, 산문집은 『눈물은 왜 짠가』(이레)등이 있음.

                                                                                           [출처]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