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詩說

오만과 편견 - 작가론, 작품론 ; 박해성

heystar 2016. 10. 25. 20:02

『오만과 편견』- 작가작품론


                                      박해성


1. 들어서면서

 

     영국 소설을 개괄할 때, 여성작가들의 활약이 질량면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을 인지할 수 있다. 이는 여타의 유럽문명권이나 혹은 영어문명권과 비교해 다른나라 여성작가들보다 그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한 예를 들어보자면; 케임브리지의 F. R 리비스가 그의 유명한 저서인 『위대한 전통』(1948년)에서 영국소설의 '위대한 전통'을 짊어질 영예를 네 사람의 작가에게 부여했는데- 헨리 제임스, 죠셉 콘라드와 나란히 제인 오스틴과 죠지 엘리어트 등 두 명의 여성작가를 꼽는 것으로서 증명된다 하겠다.

 

     작가 제인 오스틴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이 작품이 써진 18세기는 영국 근대소설의 초석이 되는 작가들이 출현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당대 영국소설의 개척자인 동시에 완성자로 평가받는 작가들을 열거하자면 제인 오스틴을 비롯해서 헨리 필딩, 사무엘 리쳐드슨 등을 꼽을 수 있겠다. 특히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18세기적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분별과 감정의 대립이라던가 자부심과 편견의 대립 등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특유의 인공(문명)과 자연의 대립 등에 관련지어져 있다. 그녀의 작품들은 18세기의 영국소설을 예술로 승화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2. 작가론

 

1) 티 테블 주변의 로맨스

      풍속소설이 영국전통의 핵이라고 볼 때 영국토착의 정신풍토와 그 전통을 대변하는 오스틴의 작품은 "시골의 서너 가정을 무대로 삼고 일상생활을 통한 삶의 모방," 이른바 <romance of the tea table' 'navel of the te'a table'>이라 일컬어지는 정통파 영국 풍속소설의 기본적 패턴을 완성시켜 놓았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1775 - 1817)에 태어나서 일생동안 여섯권의 소설을 쓴 이 여성은 영국소설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오스틴의 존재는 19세기 소설의 방향을 설정하였다. 또한 20세기 소설이 그 이전시대의 어떤 반향이라고 본다면 영국소설의 모든 길은 오스틴으로 통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이다. 이러한 사실은 19, 20세기를 통 털어서 그녀의 작품 영향을 직간접으로 받지 않은 작가가 거의 없을 정도로 후진을 배출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낳고있다.  그녀에 대한 문학적 기술면에서의 평가는 특징적인 서술의 제시 방법이나 주제의 접근에 있어서 - 근대적 자아의 각성,  자기발전에 대한 탐구 - 등 이전의 소설과는 확고히 구분되어 진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다루고 있는 가정적 배경은 그 세계가 좁다는 점에서 私小說과 유사하다고 하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단순히 외면적 스토리의 전개에 집착해서 내면적 은유나 반어의 세계를 간과한 처사이다. 다시 말해서 작가는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의 가치체계를 축소된 小世界를 통해 훌륭하게 극화해 냄으로써 편협한 가정소설의 경계를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말한 대로 '서너 가정'으로 한 사회가 대변되던 그 시기에는 농촌사회에서 토지에 기반을 두고있는 지주들의 계급사회였다.  그들의 사회는 바야흐로 변화의 바람을 타고있는 동적인 세계로써 상당히 복잡한 혼란과 긴장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스틴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 또 하나는, 작가의 인간심리에 대한 흥미와 섬세한 관심이다. 사람들의 욕심이나 변덕, 모순 등에 관한 그녀의 심리적 관찰은 아이러니컬한 안목으로 작품에 잘 반영되고 있다.

   <Northanger Abbey>와 <Sense and Sensibility>는 각기 당대의 시대사상에 대한 아이러니이며 <Pride and Prejudice> <Emma>는 인간의 인식력에 대한 자기과신의 아이러니이고 <Mansfield Park>은 인간의 외면성이 야유 당하고 있으며 <Persuasion>에서는 가문이나 신분 '오만'이나 '허영심'이 개인의 'feeling'에 의해 야유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는 작가자신이 허영이나 허례허식, 또는 부자연스러움을 극도로 경계하는 성격적 요인이 작용했다. 오스틴의 아이러니는 희극성과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으며 감추어진 '웃음'뒤에도 증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문학적 특징은 그녀의 내면의식의 본질과 깊은 관련이 있다.

 

2) 평범한 생활 속의 천부적 재질 

     제인 오스틴의 아버지는 남부 영국 햄프셔주의 스티븐턴이라는 조용한 마을의 목사였다. 그녀의 일가는 대대로 그 고장의 주산물인 양모거래로 상당한 재산을 모았고 지주계급에 속할 정도로 기반이 단단한 영국의 전형적인 중류계층의 가문이었다. 제인 오스틴은 스티븐턴에서 출생하여 1801년 배스, 다음에 사우샘프턴, 그리고 초턴 및 윈체스터 등에서 살았는데 마지막 장소에서 병으로 사망, 그 곳에 매장되었다.

     일생을 독신으로 지낸 재색을 겸비한 그녀의 생애에는 몇 차례 스쳐간 戀事도 있었으나 두드러진 사건은 없었다. 어머니와 그리고 정이 돈독했던 언니 카산드라를 위시하여 가족들의 평온한 생활 속에서 그녀의 창작태도 역시 일상적인 가사처리나 별 다를 바가 없이 진행되었다. 이렇듯 제한된 범위의 장소에서 한정된 사람들과의 교섭만으로 일생을 보낸 작가에게서 秀作들이 나왔다는 사실은 그녀의 천부적 자질에서 비롯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오스틴의 처녀출판은 1811년의 『Sense and sensibility』이며 『Pride and Prejudice』는 1813년에, 『Mansfielf Park』은 1814년, 이어서 1815년에는 『Emma』가 출판되었다.

  『Northanger Abbey』과 『Persuasion』등 두 작품은 1818년 작가의 사후에 출판되었다.

     앞의 두 작품은 시대적 관습으로 여성작가의 소설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므로 'By a Lady'라는 익명으로 출판되어졌다. 이상에 열거한 6대 소설 이외에도 J. E. Austen-Leigh가 <제인 오스틴의 회상록>(1871년)속에 넣은 바 있는 <Lady Susan> 및 단편 <The Watsons>, <Sandition>(1925년 출판) 그리고 그녀가 10세에 썼다는 습작 <Love and Friendship> 등이 있으며 1932년에는 그녀의 편지들이 출판되었다.

 

3. 작품론  

 

1) 도덕적 행동규범에 대한 비판 

   오스틴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자면 우선 그 시대의 배경부터 제대로 알아야 하겠다.

 

   여성의 권리를 축소시키고 남성의 여성지배를 뒷받침하는 남성중심사회의 그릇된 여성신화는 여성이 '신체적으로 연약하고 정신적으로 미숙하다'는 관념이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오랫동안 뿌리내려 사람들의 사고뿐만 아니라 국가의 법과 관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관습적으로 오스틴 시대의 여성작가는 문학활동에 제한을 받았다. 즉 여성작가는 진지한 지적능력이 요구되는 정치, 종교, 법률 등의 문제를 다루어서는 안되고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성적자유를 요구하는 등의 페미니즘적 사유는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스틴은 남성사회가 정해준 한계를 우회하는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 방법으로 당대의 사회적 비난을 교묘히 피해 살아남았다. 그러므로 그녀의 작품내에서 당대 여성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독자의 관점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즉 외면적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감추어진 내면적 갈등을 읽어내는 혜안이 필요한 것이다.

 

   오스틴의 소설에서는 개개의 사람들이 무도회나 만찬석상, 또는 가족, 친척, 친구들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사회적 'Manners'의 문제를 중요하게 거론한다. 즉, 때와 장소에 따라 주위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올바로 인식하여 정당하게 행동했는가하는 문제가 소설의 주제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작가가 중요시하는 'manners'의 문제는 에티켓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내적 본질에 대한 접근이었던 것이다. 작품을 예로 든다면 등장인물인 콜린즈의 경우 그의 교만함, 비굴함, 어리석음이나, 또는 그의 복장, 화법, 걸음걸이, 독서 등의 'manners' 속에 그 인격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한편 그녀의 작품 속에는 일면 부자연스럽고 있을 것 같지 않은 우연, 틀에 박힌 듯 전형화 된 남녀 주인공, 등이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물론 작가는 그들에게 어느 정도는 풍자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지속적으로 문제시한 것은 '첫인상'이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First Impression'에서 출발한다. 첫인상으로 인해 사랑이 급진전되거나 반목하게 되는 것은 부자연스런 로맨스다.  <오만과 편견> 역시 이러한 비판을 피할 수는 없는 작품이다.

 

   한정된 배경 안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우연으로 만나서 화해하고 잘못된 판단에서 깨어나는 점은 한결같은 작가의 사유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하듯 오스틴의 작품 속 여 주인공들이 겪게되는 중요한 과정은 '迷夢에서 깨어남' 또는 '눈뜸'(awaking)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인생의 다반사이긴 하지만 오스틴의 경우에는 그녀의 대부분의 작품(4작품)이 이러한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거론의 대상이 되고있는 것이다.

 

2) 과도기의 무풍지대; 사회풍속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사회 풍속 면에서 본다면 프랑스 혁명을 위시하여 당대는 유럽에서 '근대로 접어드는 과도기'라 할 수 있는데 나폴레옹을 축으로 하는 동란이 있었으며, 문학에는 '낭만주의'사조를 중심으로 영국의 바이런이나 셀리, 프랑스의 스탕달 등의 작가들이 그러한 사회적 격동을 작품에 반영했다.

 

     그렇지만 오스틴은 완전히 그 폭풍밖에 위치한 평온하고 안일한 세계에 있었다. 그녀의 세계는 오히려 전시대-18세기-적 사회, 문화, 관습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전통적인 생활은 봉건적 시대의 귀족이나 대지주가 주인으로써 뿌리를 내리고 그 지역 주민들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던 한가로운 지방의 생활이었다. 그에 따라 상공업자들은 경제적 여건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관습적 가치관에 의해 비천한 존재로 취급당했다. 그녀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 역시 뿌리깊은 낡은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이와 같이 18세기적 생활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오스틴의 소설기법은 줄거리의 단순함으로 인해 당대의 교양소설이나 수필문학처럼 보여지는 면도 있는데 파란만장한 외부적 현실에 노출된 적이 없는 작가로서는 경험적 한계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2인치 짜리 상아에다 세공하는 기분으로 글을 쓴다'고 조카에게 보낸 편지에서 작가는 고백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스틴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18세기적 지성과 섬세한 감정의 세계를 비범하게 조립해 나가고 있다.  

 

3) 여주인공의 눈을 통해 보는 '오만' 과 '편견'

      이 작품의 제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자면 'Pride'라는 말은 -자존심, 자만심, 긍지, 자부심, 교만, 오만, 도도함- 등으로 해석할 수 있으므로 부정과 긍정의 양면성이 공존하고 있다. 또한 'Prejudice' 역시 -편견, 적대감, 불신감, 선입감, 편애' - 등으로 풀이할 수 있으니 우리의 입맛에 맞는 적확한 어휘를 고르기는 쉽지 않다.  사실 두 주인공들에게도 두 의미의 요소가 교차되어 나타남으로 다아시를 '오만', 엘리자베스를 '편견' 이라고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만과 편견>의 여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단조로운 시골생활에서 한계가 있을법하지만 인간의 지속적인 변화를 인식하는 그녀는 관찰의 원천이 고갈되는 경우는 없다고 안위한다. 따라서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결코 흔들릴 줄 모르는 판단력'에 자신감을 가지는 'Pride'를 드러낸다. 그러한 자신감으로 감히 언니인 제인의 사람 보는 눈(특히 남자를 고르는 안목)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과연 엘리자베스는 인간의 실체를 올바로 파악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녀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단순한 인간과 복잡한 인간의 두 종류로 구분되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분류법에 優劣의 판단이 뒤따른다는 보장은 없다. 엘리자베스의 경우에는 빙리, 콜린즈, 캐서린 부인 등 단순한 사람들의 판단에는 오류가 없었다.

     예를 들어 빙리에게서 '무슨 일이든 성급하게 처리해버리는' 성격임을 간파한다거나 콜린

 즈의 편지만으로 교만과 비굴이 교묘하게 섞여있는 실체를 꿰뚫는 예리함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다아시, 위컴, 샬롯트와 같이 다면적인 성격을 가진 경우에는 그녀의 안목이 전적으로 빗나가고 말았다.  별 볼일 없다고 생각했던 다아시가 진짜 신사였고, 신사라고 호감을 가졌던 위캄은 터무니없는 건달인가하면, 자신과 같은 가치관을 가졌다고 믿었던 친구 샬롯트에게서는 허무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자신이 거절했던 구혼자 콜린즈를 샬롯트가 끈질기게 도맡아 준 일은 친구의 불편을 덜어주려는 친절한 행위가 아니라 샬롯트 자신의 '남편찾기'의 책략이었다는 사실이 엘리자베스에게 큰 충격이었다.  오로지 세속적 이해만을 앞세우는 샬롯트의 결혼관 앞에서 엘리자베스는 그 오랜 세월동안 친구의 실체에 대하여 자신이 얼마나 맹목적이었나를 깨닫는다. 그 사건으로 인해 인간의 외면과 실체의 괴리를 경험하는 엘리자베스는 현실 인식의 어려움을 통감하는 계기가 된다.

 

     엘리자베스의 성격분류에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그것은 때와 장소에 따라 자신의 입장에 걸 맞는 'manners'를 표출해 낼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단순형, 복잡형, 등의 분류와는 달리 인간의 가치관이 개입한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등장인물 개개인의 'manners'가 필수적으로 판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즉 여주인공인 엘리자베스의 눈을 통해 등장 인물들의 성격이나 태도가 하나하나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다.

     - 빙리의 '뽐내지 않는' manners, 위컴의 '기분 좋은' 또는 '붙임성 있는' manners를 선호한 반면에 다아시의 '거만하고 냉정한' 그리고 리디아의 '뻔뻔스럽고 조심성없는 manners와 캐서린 부인의 '권위주의적'인 manners를 엘리자베스는 배척하고 있다.

   즉 신사로서의 '마땅한 manners'를 기준으로 개개인의 성격이나 태도에 대한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오만'은 당대 지주계급의 가치관을 반영한 것으로써 결국은 자기 자신의 이상적인 '신사상'의 추구로 드러난다.  

 

4) '인상'과 현실인식

     작가는 이 작품에서 여 주인공을 우호적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다아시가 자신을 예쁘지 않다고 한 말을 우연히 엿듣게 된 엘리자베스는 '퍽 재미있게' 그 말을 받아 들여 스스로 퍼뜨리고 다니는 꽤 발랄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녀의 이면을 보면 그 한마디의 말로 다아시를 '거만하고 불쾌한' 남자로 규정지어 버리고 교제를 피한다. 그것은 외면적 행동과는 다르게 그녀의 속으로는 그의 말을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 역시 외면과 내면이 다른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녀의 상대에 대한 첫인상은 이렇듯 한 순간에 규정지어지고 있다. 오스틴의 작품에서 '인상'은 인식의 첫 단계이다. 하기만 그러한 '인상'이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으므로 理性의 힘으로 수정되거나 보완되어 '지식'으로 이어지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그렇지만 보증되지 않은 '지식' 또한 진정한 '인식'이 될 수 없으니 - 작품 안에서 베넷가의 여학자 격인 메어리의 지식은 그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이 작품은 '첫인상'이 현실인식의 수단으로 어느 만큼 유효한 것인지 그 효용의 범위와 한계를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가 분류했듯이 '단순한 성격'에서는 오류가 없었지만 다면적인 경우에는 인식에 도달하기 전에 절대이성의 도움으로 수정되거나 충분히 숙고해야할 문제인 것이다.

     엘리자베스의 경우에는 다아시에게 모욕당한 자의 편견이 작용해서 분별력을 잃고 '첫인상'을 인식 자체와 혼동하고 있다.  반면, 위캄에 대한 그녀의 호감은 다아시에게 당한 수치심을 회복하려는 일종의 반감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는 편견으로 이성이 어두워진 결과 위캄이 다아시를 중상하려는 의도를 읽지 못하고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확증 짓는다. 그렇지만 다아시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첫인상이 전적으로 과녁을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상대를 비하하는 다아시의 그러한 발언은 분명 신중했어야 옳다.  작가가 강조하는 'manners'라는 단어가 이러한 대목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여주인공 역시 빙리같이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청년의 친구라는 점에서 다아시를 표면으로 드러난 'manners'말고 사려 깊은 안목으로 주시하는 신중함이 필요했다.

 

5) 감정과 이성의 조화   

     사실 다아시의 인격은 '감정과 이성의 조화'가 가져다준 성과로서 엘리자베스의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의 표정'에 매료될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위의 사물에 생기있고 개성적으로 반응하는 엘리자베스의 신선한 인상은 다아시의 감정을 사랑으로 몰입시키면서 자신의 '오만'을 자인하는 결과로 드러난다. "당신 덕분에 교만하지 않은 사람이 됐습니다." 라는 다아시의 고백은 그의 이성과 감정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작가의 세계는 감정과 이성의 두 세계가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위컴과 리디아의 애정행각은 엘리자베스의 인식을 확정짓는 계기가 되는데, 이 사건은 다아시가 신분뿐만이 아니라 인격이나 본질적 품성으로도 진정한 신사임을 깨닫고 두 번째 청혼을 수락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작품 내에서 엘리자베스의 처신은 당시의 여성으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당찬 행동이었지만 운 좋게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남편을 만난다는 해피엔딩은 좀 작위적이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하지만 남편을 만나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대사라면 엘리자베스의 '남편 찾기'는 그녀 자신의 인생을 모색하는 진지한 성찰의 길이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수용될만하다.

 

4. 매듭지으며

 

     "제인 오스틴의 여주인공들은 항상 사회를 이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 안에서 사회를 이긴다. 여주인공들은 자신의 요구와 갈망을 발견하고 주장해서 끝내 만족시킴으로써 적대적인 압력에 대항하여 그녀의 성실성을 보호함으로써 승리한다." (John Lauber)

 

     『오만과 편견』에서의 여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 역시 인습을 타파하는 강인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빗길을 걸어서 언니 제인을 찾아가는 그녀의 행위는 스스로 판단하고 처신

 하는 자율성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외면적인 체면치레에 급급하던 당대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이다. 그녀의 걷는 행위는 '자립'을 상징하면서 남성지배사회의 위협적인 도전으로 각인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집안의 재산과 자신의 미래가 달려있는 콜린즈의 청혼을 거절하면서 자신을 "합리적인 존재"로 봐 달라고 하는 엘리자베스의 요구는 자신의 의사표현 능력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인간이하의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인간적 절규라 할 수 있다.

     "위협받을 때마다 용기가 생겨"나는 여주인공은 단지 경제적인 면을 계산하여 신념을 버리면서까지 청혼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그녀의 성격 특성은 타인에게 속박되지 않고 자신의 분별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비판할 수 있는 용기이다.

  그러므로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당대의 피상적인 교양을 거부하고 가정교사 없이 스스로 하고싶은 공부를 한다던가 당대 여성으로서는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결혼에 대하여 사랑을 중시하는 여주인공의 개성적 manners는 가히 혁명적이다.

   

     다아시가 우월한 신분상의 오만으로 상업하는 사람들은 천박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점과,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판단을 무조건 신뢰하는 오만이나 상류층 사람들은 모두 속물근성을 가지고 있다는 편견은 팽팽하다. 이러한 대결은 엘리자베스의 청혼거절로 다아시가 반성하고, 대신 다아시의 사랑고백으로 엘리자베스 베넷의 편견을 수정하게 만든다.

 

     엘리자베스는 가문과 재산 모두를 무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모두를 얻는 결혼에 도달한다. 행운이다! 그렇다면 다아시는 그녀와의 결혼으로 무엇을 얻는가? 독자가 간과하는 것은 다아시의 희생적 사랑이다. 물론 그녀에게 매혹 당했다는 논리로 합리화한다지만 당대의 사회상으로는 쉬이 납득하기 힘들다. 훌륭한 가문과 재산에도 불구하고 다아시는 스스로 사회적 관습과 편견에 맞서는 용기를 보여준다. 결국 인습타파를 추진한 것은 엘리자베스지만 완결시킨 것은 다아시라 할 수 있으니 그들의 결혼은 페미니즘의 안목에서라기보다는 휴머니즘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편 작가 오스틴은 당대 남편의 선택이 곧 삶의 선택임을 인식시키는 작가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여성의 인격이 무시당하는 불합리한 사회상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풍자하는 한편 평범한 일상 속에서 타인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영국소설의 정통을 선명하게 예시해주고 있다.

      외국소설을 대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부분적으로 최명희의 『혼불』과 비교해봤다. 물론 언어가 다르고 풍속이 다르니 제대로 대응이 가능한지는 의문이지만 사회상의 반영이라던가 주변 생활사나 자연풍경의 묘사가 우리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회가 되면 두 작품을 비교문학 차원에서 다뤄보고 싶다■


                                                                                                                                                                      - 박해성의 내멋대로 책읽기

 

 

◆ 참고

* 제인 오스틴 저. 박진석 옮김.  『오만과 편견』 을유문화사. 1988

* 조한선 지음. 『제인 오스틴 작품연구』실천영어연구소.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