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스크랩] 詩 - 수고양이 / 권혁찬 -2010년 제 22회 현대시학 신인상 수상작

heystar 2011. 3. 24. 10:10

 

고양이

 

 

수고양이

 

권혁찬

 

 

언제부턴가, 밤이면

내 지난 날들의 무용담은 쉽게 무너졌고

내가 집착해야 할 몇 개의 암컷도 길을 잃고 서성였지요

 

다만, 몇 근 졸음의 중량으로 저울질 되기 시작했습니다

 

밤을 쫓던 내 날렵한 수염들은 느려졌고

늘 그렇듯 밤 골목엔

식물성으로 둔갑한 어둠 몇 마리 어슬렁거릴 뿐입니다

화살처럼 쫓던 시절과 어느 늦은 야생의 표정들

이젠 성급히 체념해야 할 목록들일 뿐입니다

혈통이란 이젠 거추장스러운 내 발톱처럼 묘연합니다

단지 도시의 청결을 위해서, 라는 이유로 귀결될

어느 삼류 정치가의 말 버릇 같습니다

 

오늘 밤,

 도시의 후미진 골목 그 끝을 따라가 보면

누군가, 잠적이란 가죽 하나 벗어 놓고

모습을 감출 것 같은 예감이 우글거립니다

 

그리고

오후 저쪽의 담장 밑엔, 그 잠적으로부터 몸을 말리고 있는

 수고양이 몇,

중성의 눈빛으로 졸음만 핥아대고 있습니다

 

 

출처 : 은 행 나 무 시 학 회
글쓴이 : 김명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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