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 화제의 초점 - 이경철
만나다
박 해 성
‘막’ 이라고 뱉으면 와락 과격해지고 ‘막막’이라고 되씹으면 문득 숙연해진다 중복의 꼬리를 잡고 아라연꽃* 보러 가는 길, 눈부신 지느러미를 퍼덕이는 햇살 아래 이제 막 끝물 연들이 전생을 되씹는 곳 “막 살까” 그가 말한다, 꽃대궁이 흔들린다.
“사는 게 막막해”가 “막 살까”로 들리다니 각본 없는 이 연극은 언제 막을 내리려나 가슴이 무너지는지 붉은 꽃잎 뚝뚝 지는 차안과 피안을 건너 칠백년을 걸어온 이, 몸도 넋도 다 비우고 진흙탕에 주저앉아
저 봐라, 부르튼 입술로 게송을 읊조린다
* 2009년 5월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 발굴된 고려시대의 연꽃 씨앗에서 발아한 연꽃.
- 수록; 현대사설시조포럼 엔솔러지 『이슬화법』2015, vol. 6.
- 3장 중 초장, 중장이 늘어난 사설시조이다. '막' 이라는 말과 그 말이 중첩 된 '막막'이라는 말 사이의 긴장과 반전의 사설이 시를 이끌고 있다. 7백년 만에 다시 꽃을 피운 아라연꽃은 시의 배경이고 이 말들이 주어와 주제 및 소재가 된 시로 읽을 수 있다.
그런 사설인데도 재미나 해학보다는 삶을 더 숙연하고 가없이 가없이 막막하게 하며 서정적으로 나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초장 중장의 길이가 엇비슷한 길이가 되게 계산적으로 나누지는 않았나, 즉 형태상으로만 나누어 서정적 경과를 어긋나게 하지 않았나 하는 감을 지울 수 없다.
초장의 첫 마디 "'막'이라고 뱉으면 와락 과격해지고 '막막'이라고 되씹으면 문득 숙연해진다"만 초장으로 독립시키고 다음 부분들은 아래 중장과 함께 묶는 게 주제의식도 더 선명하게 하고 사설로서서도 더 낫지 않았을까.
[출처] 『정형시학』2016, 봄호 - 이경철 <화제작, 화제의 초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