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무중력 - 권기만
heystar
2016. 2. 17. 15:37
무중력
권기만
테라스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본다
지구를 관통해 달 플랫폼에 착지하는 발걸음
먼저 떠난 내 안의 관성들
지금 어디를 떠돌고 있을까
카페 타임머신에 가면 사람들은 다 우주인이다
타성을 한잔 술과 바꾸고
습관처럼 기억 속 은하를 떠올린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로얄 위스키 무중력
선불입니다
얼마죠
일만 광년입니다
안드로메다행 열차는 언제 떠납니까
카프카의 城에는 왜요
제 아내가 거기에 살죠
천정에 떠있는 무수한 소행성 사이로
빛치마로 얼굴을 가린 안드로메다를 본다
무게를 버린 나의 눈동자
도대체 나는 누구를 만난 것일까
얼마나 멀리 나를 떠나야
내 안의 행성인과 만나게 되는 것일까
달 플랫폼에서 출발하는 은하철도
빗방울 잡아타고 무작정 달아나는
광활한 시간의 꿈
술잔 가득 고여 있다
한입 털어 넣으면 혈관을 미끄러지며
뿌옇게 흘러가는 은하수
거칠것 없다 없다
시동을 거는 천둥소리
공간 전부를 발사체로 쓰는
한여름 밤의 폭우
먼 우주의 중력장 속으로 빨려드는 25시
이제 돌아온다는 건 시간 밖이다
- 월간 『시와 표현』2016, 2월호에서
경북 봉화 출생.
- 2012년 계간『시산맥』등단.
- 제 7회 최치원신인문학상 수상.
- 시집; 『발 달린 벌』(2015,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