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 최금진
개
최금진
이제 쉴 때가 되었으나 나는 그렇게 길들여지지 않았다
인간은 내게 굴복을 가르치기 위해 목줄을 매었으니
누워서 지평선을 물어뜯다 보면
고무줄처럼 바닥은 다시 생겨나고
자전축이 23.5도 기운 만큼
나는 언제 어디서나 고개를 갸웃거린다
콧등에 벌이 앉아 있는 것, 땅바닥에 민들레가 핀 것
사람들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 이 모든 것을 느끼는 것
…… 나도 때론 찬송가를 부르고 싶다
짐승도 구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바닥에 엎드려 한평생 사람들의 웃음을 핥아먹느라
척추가 휘었다
나는 나인가, 물 웅덩이에 고인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컹컹 짖을 때 고통스럽다
인간은 내가 하는 질문에 답을 준 적이 없다
살점이 잔뜩 붙은 뼈다귀가 대체 이 늙은 개에게 무슨 상관
개미집에 개미들이 다시 태어나고
잔디밭엔 어린 잔디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아장아장 걸어다닌다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건
녹슬어가는 커다란 철못뿐이다
기울어진다, 기울어진다, 세계가 기울어진다
바닥이 얼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인간들도 나와 같이 늙어가고
어둠이 이 집의 유일한 상속자다
개가 말을 낳았다는 소문, 자신이 자신을 낳았다는 소문
질문은 요령부득의 괴담 속에서 우리에게 재차 묻는다
늙은 개여, 너는 무엇을 알고 있으며, 무엇을 모르는가
죽음 외에 우리를 받아줄 바닥이 있단 말인가
컴컴해지는 저녁 골목을 향해 컹컹 짖어보면
여기저기서 굶주린 개들의 합창
늑대가 아니라 개인 이유, 나에게 예절을 가르쳐준
신앙심 깊은 인간은
저 어둠 속을 걸어 불쑥 나타나 내 머리를 쓰다듬고
아무도 없는 빈 방으로 쿵쿵, 사라질 뿐이다
-『현대시학』2016, 2월호에서
1970년 충북 제천 출생.
- 춘천교육대학 졸업.
- 1997년《강원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 2001년 《창작과비평》 신인시인상 수상.
- 시집; 『새들의 역사』(창비, 2007), 『황금을 찾아서』(창비, 2011),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창비, 2014)
- 산문집; 『나무 위에 새긴 이름』(쳔년의시작, 2014).
- 현재 한양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