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201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스티커 / 이명우
대문에 붙어있던 스티커를 뜯다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또 붙는 스티커를 뜯다가
스티커 뜯기를 멈추고 산동네를 떠났다
멈추고 떠날 때는 다 지운 것이어서
지운 것은 없는 것이어서
없는 여기 산동네로 다시 돌아오게 될 줄 몰랐다
대문을 겹겹이 도배한 스티커 화려하기조차 했다
긁히고 찢긴 조금도 아물지 않는 가업
허파와 심장과 위장이 모두 철대문에 붙어
겨울 냉기를 고스란히 빨고 팽팽해졌다
추락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력서를 쓰고 찢고 쓰고 찢었던 것
부도난 회사의 대표였던 이력은
지급기일을 넘긴 어음처럼 휴지였던 것
부도를 막기 위해 오래전에 빌린 사채가 펄럭이며 휴지를
산동네 꼭대기까지 얼마나 난타해댔던가
골목을 돌며 전봇대 기둥과 자주 부딪친다
골목에는 늘 똑같은 소리로 이자가 와 달라붙는다
눈치 없는 거미줄에 발걸음에 와 걸린다
발이라도 와 걸어주는 이것이 거미줄의 눈치
잠만자는직장여성환영 오십세이상알바모집 선원大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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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전봇대를 덮이는 환영, 가능, 대박,
대문에 붙어서 스티커를 뜯어내고 있는 아들이 보인다
컴퓨터 게임 대신 싫증 모르는 스티커 뜯기 놀이
경첩이 떨어지려는 대문을 어서 받쳐보려는데
어제까지 떼어낸 적색 신불자대환영 스티커가
어린 아들의 등에 세습처럼 붙어 있다
▲1959년 경북 영양 출생. 영양고 졸업.
▲현재 서울에 살며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고 있음.
[심사평]
시의 응축적인 구성력, 개성적인 상상력, 이미지화의 능력, 그리고 리듬 의식이 잘 융합된 빛나는 별이 될 작품을 골라내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고단한 오늘의 삶을 무리 없이 현실감 있게 이미지화한 이명우의 '스티커'가 심사위원 모두가 공감하여, 이를 당선작으로 밀었다.(남송우, 박남준, 안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