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詩說

가슴으로 읽는 10편의 『삼국유사』- 박해성

heystar 2015. 10. 18. 10:07

가슴으로 읽는 10편의 『三國遺事』

 

                                                         박해성

 

 

Ⅰ. 들어서며

 

   한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는 먼저 자기자신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이해는 이 땅에 살아온 先朝들의 삶의 秩序와 樣式 - 즉 자신의 뿌리를 이해함으로써 가능하다. 이는 곧 개인의 역사임과 동시에 한 민족이 살아온 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또한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새로운 尺度를 마련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먼 시기의 기록일수록 현대인에게 難解한 경우가 많다. 『三國遺事』도 예외는 아니다, 허지만 그러한 표현방법은 그 당시 사람들이 세상을 對하는 이해방식으로써 현대의 가치관으로 愚昧한 잣대를 휘두르는 偏狹함을 탈피하여 가슴으로 그 울림을 가늠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三國遺事』의 저자 一然이 그의 ‘敍曰’에 明快하게 밝혔듯이 民族自主意識을 새롭게 새기는 의미에서 나는 이제부터 우리민족의 뿌리찾기 작업에 동참하려 한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을까 ?”

 

 

Ⅱ. 卷一 : 紀異 第一

 

1. 古朝鮮 (王儉朝鮮)

 

단락 개요

① 桓因(하느님을 의미함)의 서자 -> 桓雄 - 天符印 세 개와 3000명의 다스릴 무리를 거 느리고 神檀樹아래로 下降 - 이곳을 神市라하고 이 분을 桓雄天王이라 한다.

② 인간으로 還生한 熊女와 사람으로 잠시 변한 桓雄이 婚姻하여 檀君(半神半人)을 낳음.

③ 13세기- 단군왕검 아사달에 都邑을 정하고 朝鮮 開國.

④ 단군- 1500년 간 統治 - 황해도 구월산의 山神이 되다 - 당시 나이 1,908세였다.

 

감상 포인트

   나는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를 접할 때마다 로마신화나 성경의 創世記에 비해 너무 단조로운 기록의 규모를 비교했었다. 따라서 어느 때는 그네들의 상세한 系譜와 當代 狀況의 尨大한 記述에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러나 다시금 새겨보는 『三國遺事』는 내가 얼마나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이 짧았는가를 일깨워준다, 外形에 치우친 나머지 行間에 숨겨진 긴긴 이야기를 읽어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니..... 지금도 역시 그러하지만 우리민족의 性情이 태초부터 서양의 그것과 달라 縮約된 ‘말속의 말’로 心中의 깊은 언어를 隱喩하고 있었음을 !

 

   『三國遺事』(以後省略) <古朝鮮>의 기록에 의하면 天神 환웅과 地母 웅녀의 結合인 “檀君朝鮮”은 1500년 간 지속되었다. 그렇다면 그 기간 중 記述되지 않은 여러 왕들의 이름은 단군을 비롯하여 모두 桓雄의 자손들일 것이다. 한 아버지의 자손을 일일이 다른 이름으로 나누어 記述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즉 그들은 모두가 檀君이요, 거슬러서는 桓雄이요, 하늘에서 下降한 天神인 것이다.

   그들이 다스린 나라들은 ‘周虎王卽位己卯 封箕子於朝鮮’ 까지 1500년 간 榮華를 누리며 維持되었을 것이다. 以後 檀君이 1,908세에 山神이 되었다는 기록에 의하면 400여 년 간의 空白이 생긴다. 이 空白期間을 나는 우리조상들이 다스릴 땅을 빼앗기고 방황하던 混亂의 시기로 유추하는 것이다, 그러한 苦難은 일일이 기록으로 列擧하지 않더라도 능히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400년 간의 逼迫속에서도 그들은 滅하지 않고 아사달에 山神이 되어 굳건히 이 땅의 후손을 지키는 정신적 支柱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1500년 간의 榮華로운 세월뿐 아니라 고난의 400년만 神話로 발전시킨다해도 우리의 건국신화는 餘他의 神話 못지 않게 화려하고 雄大한 스케일이 되리라고 생각하니 스스로의 무력함이 새삼 안타까워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