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의 심사평] 수화 손동작 눈에 잡힐듯 섬세하고 선명하게 그려
‘수화’를 장원으로 올린다. 수화의 손동작이 가지는 둥글고 동적인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잘 살려낸 섬세하고 따뜻한 작품이다. 보이지 않는 ‘모국어’를 ‘표정’과 ‘손가락 끝’으로 ‘채색하고 덧칠’하면서 ‘물방울 지문’처럼 세상과의 소통을 그려나가는 ‘몸의 말’이 눈에 잡힐 듯이 선명한 심상으로 살아난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소재의 특성을 극복하며 주제를 이끌어낸 실력이 녹록지 않다. ‘온몸으로 그리는 말’이 샘물처럼 솟아 마침내 고리를 물고 세상을 이어가는 내용 전개과정도 도입에서 마무리까지 치차처럼 잘 물려 있다. ‘그 손에 모국어가 사는’ ‘표정으로 붓을 들어’ ‘환하게 피어오르다 번져가는 푸른 말’ 같은 표현들은 세련된 감성과 개성적인 터치를 돋보이게 한다. 생명공동체의 인드라망을 전하는 울림의 진폭이 크다.
차상으로 ‘편지’를 선한다. 평범하고 낯익은 소재인데도 관념에 떨어지지 않고 구체적인 형상들을 통해 밀도를 높인 작품이다. ‘몇 달째 넘기지 못한 달력이 펄럭이고’나 ‘전하지 못한 말들 장대비가 되뇌고’ 같은 표현에서 습작의 저력이 느껴진다. 이별의 소재로 등장하는 눈물, 숯검정, 핏 노을, 밤, 낮달, 장대비 같은 하강 이미지들이 부정과 고통의 과정을 거치면서 ‘마침표’ 아닌 ‘쉼표’ 같은 상승 이미지로 전환하려는 내적 의지도 잘 드러난다. 다만 ‘내 청춘은 아프다’ 같은 식상한 표현이 시의 긴장과 탄력을 떨어뜨린다.
‘가로등’을 차하로 뽑는다. ‘달빛을 세워놓고서 그림자만 검문 중’ 같은 구절이 시의 맛을 살린다. 활유적인 수사를 동원한 대상의 생명이 유기적인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 둘째 수로 가면서 낱말들의 이미지 비약이 다소 심해져 첫수와의 연결이 긴밀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다. 박한규·이중원·양늘솔씨의 작품들이 끝까지 선자들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심사위원 : 권갑하·박명숙(대표집필 박명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