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무 - 김미옥
heystar
2015. 2. 21. 17:33
무
김미옥
지난 가을이었던가? 그분은 투명비닐 한겹 걸치고 우리집 베란다
로 이사를 오셨지요, 그 후 그분, 거기거 무얼 하고 계셨는지 아무도
관삼조차 없었죠. 추운 베란다 마을의 일이니까요 그리고 또 봄이 왔
죠 어느 날 베란다 마을을 기웃거리는데 글쎄 그분이 정수리에 분노
같기도 절망 같기도 또 희망 같기도 아니 아니 어쩜 딱 무의 이파리 같
기도 한 푸른 싹을 내밀고 그 속에 한 자나 되는 꽃대를 밀어 올리고
있지 않겠어요? 연보라빛 꽃 한 송이를 피리어드처럼 피워 놓고!
얼마나 진을 빼셨는지 작년에 걸치고 오신 비닐 옷이 헐렁해지도록
여위어 있었죠. 가까스로 벽에 기대어 서 계신 그분 어깨에 손을 얹자
그만 풀썩 주저앉아 버리셨지요. 보라빛 꽃 이파리가 사방으로 흩어졌
지요.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분의 발밑으로 쭈글쭈글한 저녁이
지나가고 계셨지요.
- 제5회 『문학청춘』신인상 당선작.
- 1964년 경북 의성 출생
- 2014년『문학청춘』신인상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