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거북 - 류인채

heystar 2015. 1. 21. 11:56

거북

 

류 인 채

 

 

전동차 문이 닫히는 순간 덜컹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목과 두 팔이 문틈에 끼었다

성급히 빠져나간 두 다리만 문 밖에서 버둥거린다

그러나 폐지 자루를 움켜쥔 손은 완강하다

손등에 적힌 갑골문자가 그가 헤맨 도시의 길들을 보여주고 있다

 

움켜쥔 자루는 꼼짝도 않고

門이 큰칼*이 되어 노인의 목을 겨누고 있다

 

절뚝이며 거둔 따끈한 뉴스들

아무렇게나 접힌 아침이 너무 육중하다

방금 전까지 선반을 더듬던 손은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고

쫓기듯 두리번거리던 눈빛은 단도처럼

자루에 꽂혀있다

 

안도 밖도 아닌 그 노인

눈만 끔벅거린다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여러번 당해 본 일이라는 듯

뜻밖에 덤덤하다

 

깡마른 쇠골이 산맥처럼 뚜렷하다

백 년이 순간에 지나간다

 

잠시 후 방송이 나오고 잠깐 문이 열리고

그는 늘어진 목을 천천히 제자리로 거두어들였다

 

*중죄인의 목에 씌우던 형구. 

 

- 계간 『문학청춘』2014, 가을호에서

 

1961년 충남 청양 출생.

1998『문학예술』,2014년『문학청춘등단

시집;나는 가시연꽃이 그립다』(1998),『소리의 거처 』(2014)가 있음.

인천예총 예술공로상(2013).

2013; 서울 암사동유적지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원 문학 공모전 시부문 우수상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