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나무도마 - 신기섭

heystar 2015. 1. 8. 16:00

          나무도마

 

                          신기섭

 

 

고깃덩어리의 피를 빨아먹으면 화색(和色)이 돌았다

너의 낯짝 싱싱한 야채의 숨결도 스미던 몸

그때마다 칼날에 탁탁 피와 숨결은 절단났다

식육점 앞, 아무것도 걸친 것 없이 버려진 맨몸

 

넓적다리 뼈다귀처럼 개들에게 물어뜯기는

아직도 상처받을 수 있는 쓸모 있는 몸, 그러나

몸 깊은 곳 상처의 냄새마저 이제 너를 떠난다

그것은 너의 세월, 혹은 영혼, 기억들; 토막 난

죽은 몸들에게 짓눌려 피거품을 물던 너는

안 죽을 만큼의 상처가 고통스러웠다

간혹 매운 몸들이 으깨어지고 비릿한 심장의

파닥거림이 너의 몸으로 전해져도 눈물 흘릴

구멍 하나 없었다 상처 많은 너의 몸

딱딱하게 막혔다 꼭 무엇에 굶주린 듯

너의 몸 가장 자리가 자꾸 움푹 패여 갔다

 

그래서 예리한 칼날이 무력해진 것이다

쉽게 토막 나고 다져지던 고깃덩이들이

한번에 절단되지 않았던 것이다

너의 몸 그 움푹 패인 상처 때문에

칼날도 날이 부러지는 상처를 맛봤다

분노한 칼날은 칼끝으로 너의 그곳을 찍었겠지만

그곳은 상처들이 서로 엮이고 잇닿아

견고한 하나의 무늬를 이룩한 곳

세월의 때가 묻은 손바닥같이 상처에 태연한 곳

혹은 어떤 상처도 받지 않는 무덤 속 같은

 

너의 몸, 어느덧 냄새가 다 빠져나갔나 보다

개들은 밤의 골목으로 기어 들어가고

꼬리 내리듯 식육점 셔터가 내려지고 있었다

 

- 200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1979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

2004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나무도마>가 당선되어 등단.

2005년 12월 - 교통사고로 사망.

유고시집; 『분홍색 흐느낌』.                                                                 

 

---------------------------------------------------------------------------------------------

'나무 도마' 신기섭 시인, 교통사고로 하늘로
[한국일보 2005-12-05 19:03]    

한 젊은 시인을 잃었다. 지난 4일 교통 사고로 숨진, 지난 해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기섭(26) 시인. 그는 그 사이 20여 편의 시를 발표했고, 빠듯이 시집 한 권 묶을 만큼의 시를 써 모았으며, 더 열심히 써서 번듯한 방 한 칸 마련할 돈 모으면 함께 살자고 약속한 애인을 남겼다.

당선 시 ‘나무 도마’에서 그는 칼 자국 상처 투성이의 몸으로 버려진 자의 존재론적 고통을, 그 고통 너머의 도저한 슬픔을 노래했다. “…아직도 상처 받을 수 있는 쓸모 있는 몸, 그러나/ 몸 깊은 곳 상처의 냄새마저 이제 너를 떠난다/ 그것은 너의 세월, 혹은 영혼, 기억들; 토막 난/ 죽은 몸들에게 짓눌려 피거품을 물던 너는/ 안 죽을 만큼의 상처가 고통스러웠다…” 당시 한 심사위원은 이 시를 두고 “이토록 지독한 시는 나도 쓸 자신이 없다”고 말했던 것 같고, 당선자 인터뷰 도중 시인은 “그런 시, 삶의 이면에 도사린 슬픔의 시를 질리게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시는 대체로 무겁고 진지하고 또 슬프다. 가족에 대한, 어머니에 대한 아프고 아쉬운 그리움을 담은 듯한 시 ‘할아버지가 그린 벽화 속의 풍경들’(‘문학동네’ 2005 겨울호)에서 그는 흐드러진 봄의 풍경을 ‘화상 자국’에 비유한다. “…안 먹었어! 은빛 오뎅 냄비가 눈보라 속으로 뱅글뱅글/ 날아올랐다 공중에서 쏟아지는 오뎅 국물이/ 인간을 피랍할 때 쏟아지는 UFO의 빛처럼/ 할머니의 몸에 닿았다 한 겹 꺼풀이 벗겨진/ 할머니의 몸, 벽화 속의 붉은 엄마가 완성되었다/ 지워지지 않는 엄마의 무늬…/상처의 냄새 봄의 냄새 사라지지 않았다/ 화상 자국 같은 봄이 곳곳에 만발했다…” 그의 슬픔의 연원은 정(情)에 대한 굶주림이고, 그의 시는 그 주림을 달래는 양식이었을지 모른다.

지난 해 이맘 때 만난 그는 안구 건조증을 앓고 있었고, 늘 ‘인공 눈물’을 들고 다녔다. “눈물이 없다”던 의사의 진단은, 돌이켜 생각컨대, 몸의 물기를 쥐어 짜 온통 자신의 시에 담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시인의 그 진액 같은 물기는 시 속에 복류(伏流)하며 그의 시를 읽는 이들 속에 감춰진 순정한 슬픔의 수맥에 이어지는 것이리라. 그는 항상 속으로 슬펐지만 겉으로는 유쾌했으며, 그래서 친구들이 유달리 많았다고 모교(서울예대) 선후배들은 추억했다.

그의 마른 육신은 5일 고향(경북 문경)과 학교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장돼 경북 영천의 만불사라는 아담한 절에 안치됐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