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엘리베이터 속의 파리 - 최승호
heystar
2014. 6. 26. 14:13
엘리베이터 속의 파리
최승호
썩어서도 거드름 피우는
그 놈들 코에 가 붙지 않고
하필 파리가 내 뺨에 붙었을 때
나는 죽은 꽁치들이 빽빽한 통조림 속에
머리를 내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불쾌했다
내 안에서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랄까
나는 손을 들어 파리를 쫓았다
그 동작이 늪 수렁에 빠져 살려고 버둥거리는
허우적거림으로 비쳤을지 모르겠다 죽음에 둘러싸여
무력했지만 파리 쫓을 힘은 있었다
빌딩을 오르내리는 날개 없는 요일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있었다
올라가도 거대한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듯
함몰과 큰 추락에 대한 공포에 나는 떨고 있었다
- 최승호 시집 『세속도시의 즐거움』중에서
서울대학교와 同 대학원 졸업.
19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대설주의보』, 『고슴도치의 마을』, 『진흙소를 타고』, 『세속도시의 즐거움』, 『회저의 밤』,
『반딧불 보호구역』, 『눈사람』, 『여백』, 『그로테스크』, 『모래인간』 등
산문집; 『황금털 사자』, 『달마의 침묵』, 『물렁물렁한 책』 등
그림책; 『누가 웃었니?』, 『이상한 집』.
1982년 '오늘의 작가상', 1985년 '김수영문학상', 1990년 '이산문학상', 2000년 '대산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