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의 시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heystar
2011. 2. 23. 11:34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덕혜옹주를 그리며
박 해 성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말년의 덕혜옹주가 정신이 좀 맑은 날 썼다는 한 장의 낙서.)
그리 오래 살고 싶다던 낙선재 뜰에 서면
하늘을 가리려는지 덮개 씌운 우물 하나,
문안問安 차 들른 낮달이 울먹이다 돌아서고
조선 백자 사금파리에 무명지 베인 햇살
단청 없는 적막강산 심드렁 쓸고 있다
이제는 잠들었는가, 날개 찢긴 하얀 나비
입김마저 얼어붙는 바다 건너 유배의 땅
생혼 다 볼모잡힌 풀각시, 풀각시인 듯
얼얼한 허울만 남아 몽환 속을 헤매던 이
마지막 쪽지 한 장, 외마디 그리움에
무릎 꿇고 올리는 부끄러운 눈물 한 잔
그 생애 뉘 낙서처럼 지웠다 새로 쓰고 싶다
*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곡 제목 인용.
- <시조시학> 2010년 봄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