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 나희덕

heystar 2014. 3. 13. 23:23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나 희 덕

 

 

 

말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으키며
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

흰 갈기와 검은 발굽이
시간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나는 물거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해변에 이르러서야
히히히히힝, 내 안에서 말 한 마리 풀려나온다

말의 눈동자,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가라, 가서 돌아오지 마라
이 비좁은 몸으로는

지금은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
흰 물거품으로 허공에 흩어지는 시간

 

                        - 출전; 나희덕 시집『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사)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등.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함.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이며 '시힘'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