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論 - 박해성
우선 <시론>이라는 거창한 타이틀로 발표된 내 글을 보면서 새삼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 허나 이 글은 아래 문학잡지에 내 작품을 발표하면서 몇 자 끄적거린 것이니 그리 정색하고 읽을 필요가 없음을 미리 알려드린다 *^^*
<시작노트>
죽을 때까지 지구별의 율법에 순응하지 못하던 한 사람이 있었다. 아무도 그가 어느 별에서 왔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애당초 세상과 타협할 생각이 없었다는데,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별자리를 헤아리는 일이 전부, 때로는 별에 취해 어지러운 세상 따위 아예 잊고 살았더란다.
나는 그가 흔들리는 이승 바다에서 건진 오직 한 점 작은 별 ―― 어쩌면 발을 헛디뎌 나의 성좌에서 떨어지던 날 우연히 잠든 그를 깨웠을지도 모를 일, 그때부터 나는 떠돌이별의 뿌리를 간직한 채 사람의 자손으로 살아야만 했단다.
악몽에 쫓기다 가위 눌려 잠에서 깬다. 내 체질에 맞지 않는 지구문법이 화근이었을까? 아니면 미지의 성좌를 동경한 형벌일까? 언제부터인가 들끓는 말의 연옥에서 잠 못 들고 두통에 시달렸다. 랭보의 말을 빌리자면 ‘시인’이라는 “가장 위대한 죄인, 가장 위대한 범죄자, 가장 위대한 저주받은 자”가 될 조짐이었나보다. 결국 나는 겁도 없이 바늘구멍을 통과한 외로운 낙타가 되고 말았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생의 사막을 건너는 동안 건망증 심한 나의 아버지는 그 알량한 DNA를 두고 떠나셨다. 가끔은 지하철 군상 속에서, 때로는 허공에 매달려 유리창을 닦는 사내에게서, 혹은 길 잃은 유기견의 눈빛에서, 누군가를 떠올리기란 내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세상의 내면을 읽어내느라 인생을 허비했던 아버지의 DNA가 생생히 살아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그렇다, 소위 ‘시인’이란 가슴으로 세상을 읽는 사람이렷다. 망막에 맺힌 대상을 절절하게 가슴에 품었다가 내면의 깊은 통증으로 곰삭혀 걸러내는 한 방울 영혼의 정수, 詩라는!
하여 누구는 온 몸으로 시를 쓴다 했던가? 하지만 어찌하랴, 몸을 던져 피투성이가 되어도 말이 되지 못하고, 제 아무리 심장이 뜨거워도 시가 되지 못하는 지상에서 오직 문자라는 기호만이 소통의 도구인 것을……
그러므로 나는 지구별의 질서에 따라 글을 쓸 수밖에 없다. 하찮은 말로써 삶의 씨줄과 날줄을 엮는 어리석은 작업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무엇을, 왜 어떻게, 쓸 것인가? 늘 두려운 마음으로 고뇌한다. 실은 ‘어떻게 시를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말을 절약하느냐, 즉 침묵으로 보여주기’가 절실한 화두인 셈이다.
일찍이 앞서 간 문학이 그러했듯이 생의 핵심을 짚어내는 은유나 알레고리, 또는 해학과 패러독스 등등 단순한 언어만으로는 쉬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사상과 철학이 내 시의 절제된 행간 속에 온전히 살아 숨쉬기를 감히 소망한다. 하여 겉 멋든 각성이나 뻔한 현실비판, 혹은 지루한 수식이나 난해한 푸념 같은 말의 잔가지를 용기 있게 잘라 내거나 여백의 침묵으로 내면의 사념을 대신하는 난해한 문학적 과제를 안고 나는 오늘도 자신과 씨름 중이다.
때로는 현실에서 이탈한 나 아닌 내가 미지의 나를 찾아 미증류의 카오스에 휩쓸리기도 한다. 내 몸 속에 살고 있는 허기진 늑대를 불러내고 숲 속에 자라나는 푸른 혈관의 나를 만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맛본다. 청동기 검을 뽑아 강을 가르고 발해의 초원에서 들꽃을 꺾으며 은하철도를 타고 직녀를 찾아간다. 가끔은 엘도라도 언덕의 대장 독수리가 되어 누군가의 조장鳥葬에 경건히 참여하기도 한다. 어느 곳에도 안주 할 수 없는 나, 내가 나를 만나기가 왜 이토록 어려운가, 아무데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나는 정녕 누구인가?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돌아보니 텅 빈 마당에 나 혼자 남았다. 그래도 두려워하지 말자, 비겁하지 말자, 남들도 나만큼이나 아득하지 않았겠는가.
말치레로 어지러운 세상에서 군더더기 없는 3장 6구 12마디, 시조의 간결한 호흡으로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 그도 아니라면 그저 함께 얼싸안고 실컷 울기라도 해야겠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나는 술래 - 외로워서 다행이다. ■
[출처] 『서정과 현실 』2013, 상반기호에서
<박해성 약력>
-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
- 2012년 천강문학상 시조부문 대상 수상.
- 시집; 『비빔밥에 관한 미시적 계보』